종교적 라이벌이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평소 죄를 덮어 씌우려고 골몰하다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지 안 내는지를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물어
만약 세금을 내라고 답하면
'어째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십니까!'
라고 말하면서 흠집을 내려 했고
만약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이 사람이 로마의 법을 어기라고 선동했다면서
법정에 고소해 예수를 잡아들일 계책을 꾸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
'외식(위선)하는 자들아 어찌해서 나를 시험하느냐고!' 고
꾸짖으시며 한편으로 이상한 말을 하여서 그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셨습니다.
세금 낼 돈을 자신에게 보이라 하시고 데나리온 하나를 가지고 나오니
이 동전의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묻습니다.
사람들이 '가이사(카이사르)의 것입니다!' 고 대답하자
'그러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 드려라'
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자 당황한 바리새인들은 감히 더 묻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납니다. (22절)
그러면 예수님께서 설명하신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가이사의 것은 무엇이고 하나님의 것은 또 무엇일까요?
일부 교사는 이 본문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돈을 좋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로마 황제는 세금만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기도,찬양,말씀 묵상) 드리길 원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단지 우리가 마음을 드려
주님을 섬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비유를 드신 것일까요?
본문 22장에 이어 23장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정의와 자비와 신의를 지도하지는 않으면서 헌금만 강조하는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셨지만
그래서 박하와 회향과 십일조를 (가이사의 동전으로) 내지 말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고 하셨는데 (마태복음23:23)
당시 성전의 모든 헌사 또한 로마 화폐로 통용되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가이사가 돈으로 섬김 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달리리
하나님은 돈으로 섬김 받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뜻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은 명확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
이 '하나님의 것' 이란 단어인 것입니다.
동전은 가이사의 얼굴과 글이 인쇄 되어 주조되었으니 가이사가 것입니다.
그럼 대체 하나님의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통용되던 데나리온은
당시 로마 정부가 직접 만들고 시민들에게 배포한 화폐였습니다.
여기서 '가이사의 것' 이라 하는 것은 애초에 가이사가 그것을 고안해 배포했다는 뜻입니다.
가이사는 이 화폐를 사람들에게 만들고 나누어 주어 가이사의 세상에서 이 화폐가 통용되게
했으며 이 화폐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게 했습니다.
결국 가이사의 것이 가이사에게 나와서 가이사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만드셔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믿음의 세계에서 통용되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깨닫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무엇인지 알수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구약의 인물 아브라함은 이에 대한 계시를 받은 바 있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노년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독생자 이삭을 얻어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청천벽력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임합니다.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귀한 아들을 그냥 죽이라는 것도 모잘라 번제물(도려내고 불로 태우는 제사물)로
드리라 하니 아브라함의 고통과 번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가져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 생각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증언을 추가하자면
아브라함은 죽은 자 중에 능히 자기 자식을 돌려 받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믿음을 가졌다고 했습니다.(히브리서11장17-19절)
아들, 이삭은 나뭇가지를 짊어매고
아비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들고 모리아 산을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산을 오르다 보니 번제물이 보이지 않아 이삭이 아버지께 묻습니다
'아버지, 우리에겐 번제할 어린양이 없습니다? (혹시 깜빡 하신겁니까?) '
이 말을 들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고통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아브라함은 거짓말로 둘러댔습니다.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친히 준비하셨을게다 (창세기22:8)'
그런데 이 말이 부지불식간에 예언이 되리라고는 아브라함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단 위에 묶어 놓고
칼로 내려 치려 했고 하나님께서 그 순간 아브라함을 저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눈을 열어 숫양이 수풀에 걸려 있는 것을 보게 하시고
그 숫양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게 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감동함을 받아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친히 준비하신다)' 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번제물 사건을 보면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아브라함이 받은 감동을 함께 얻은 것일까요?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예배할 것을 우리를 위해
친히 준비하심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보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다른 이방의 신들처럼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갈지 고민하셨던 분이 아니라
자신을 예배할 예물 조차 친히 준비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아끼는 독자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는듯 하였으나
사실은 자신을 위한 한 제물을 준비하셨으니
가장 사랑하시는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그 제물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의 번제 사건을 통해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계획을 보게 되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여호와 이레' 를 노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신께 드릴 제물을 우리에게 내려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작품이며 하나님의 그림이며 하나님의 글귀가 새겨진 것인데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선물인 자신을 두고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것이다 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이사의 동전을 보아 왔습니다. 그 동전은 가이사의 영광입니다.
세상에서 모든 경제 활동을 가능케 해주는 능력이며 부의 척도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세상의 왕에게 세금을 바칩니다.
이 점은 성경에 명확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세상 무뢰한들로부터 칼을 차고
우리를 지켜주는 권세자들의 (순)기능을 인정하기 위해서라고
세금을 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마서13:4-6 / 표준새번역)
통치자는 여러분 각자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각자가 나쁜 일을 저지를 때에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나쁜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진노를 두려워해서만이 아니라, 양심을 생각해서라도 복종해야 합니다.
같은 이유로, 여러분은 또한 조세를 바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바로 이 일을 하는 데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무엇으로 주님께 예배 드리며 나아갑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달아져야 진정한 예배를 드릴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데나리온(영광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반드시 입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인 예수 그리스도(롬6:23)를 입을수록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깊이 관여된 사람입니다.(마태복음18:18-20)
그리스도의 지혜로 세상을 다스릴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땅 위의 모든 시험과 악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복을 풍성히 얻고
그 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다시 돌려 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가이사는 로마의 황제입니다.
그는 로마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얼굴이 그려진 동전을 소유하길 원합니다.
그는 그 화폐를 통해 사람들이 경제적 활동을 활발히 하고
거기서 나오는 윤택함을 통해
국가에 세금을 내고 모두가 더욱 윤택한 삶을 누리게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은 로마의 군인과 경찰들이 늘 지켜줍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부와 영광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담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나눠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와 은사들로써
우리는 모든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하며
하나님 나라의 법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하나님의 천사들이 지켜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모두 가이사의 동전을 사용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세상 군주의 통치를 동시에 받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받은 헌신과 봉사에 대해 무시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이 봉사한 삯을 그들에게 공정히 지불하며
그들의 사회적 역활과 기능을 인정해 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좋은 것이 있으니
이 세상이 우리를 박해하고 사방으로 우겨싼다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 썩음을 당치 않는 그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을 얻어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하며
그리스도의 얼굴에 비춘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하나님의 동전) 이
우리 마음에도 비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열심과 자기 의로움, 기만적인 종교 생활에 쉬이 빠져듭니다.
하지만 예수를 깨닫게 하지 못하는 신앙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혀 영위하지도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하지도 못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쓸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데나리온'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하나님의 것인 예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자신의 열심과 헌신으로
온갖 것을 드리며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러나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과 형상이 담겨 있지 않다면
그 헌사에 하나님께서는 전혀 '불' 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의 중얼거림을 듣지 않으시며
예배에서 타오르는 연기를 흠향하시고 복을 내리시지도 않습니다.
결코 그런 제물로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적인 것을 나누어 주시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어떠한 응답을 얻으려고 기도하다
스스로 실망하고 좌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가인처럼 예배 드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안의 죽은 것으로 다시 하나님을 섬기길 기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하나님께 합당한 것을 드립시다!
아벨처럼, 첫 수양의 기름을 짜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자기 삶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고린도후서4:6-10 / 개역개정)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1:3-4 / 개역개정)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