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1일 월요일

기나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읽으실 때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성경을 들여다 보십니까?

 

우리가 가까운 서점에만 나가 보아도

단 한가지 성경 말씀에 대해서 여러 각도로 풀어놓은 책들이 즐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말씀을 보아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고

강조점이 다르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꺼라 여기십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의 본래 뜻을

파악할 수 있으며 그 뜻대로 살아 생명을 거둘수 있을까요? (요5:39)

 

예수님 본인은 자신의 어려운 가르치심들에 대해

제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그것을 깨우칠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을까요?

 

성경의 기록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대신 보내 주시는 보혜사 성령께 배운다면 지금은 어려워서 잘 이해할수도 없고

또 기억하기도 힘든 말씀들을

모두 생각나게 해 주시고 하나 하나 가르쳐 주신다고 말입니다.(요14:26)

 

그리고 고린도전2징10절에서는

오직 (다른 것으로는 아닌) 성령으로만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통달 할수 있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교사들은 성령(의 계시나 경험)을 통해 말씀을

해석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있거나

신비주의적이라며

다른 도구들 예를 들면

원전 해석, 시대적인 문화와 배경 연구, 저자의 자라난 환경과 성격 분석, 단어의 연계성과 문맥 연구등을

사용해 성경을 해석해야만

그것이 성경 중심적 해석 방식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로 인해 성령님은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직접 말씀을 가르쳐 주시는 자리로부터 쫓겨 나셨으며

성도들을 위로 하시거나 예언, 방언, 치유의 선물을 베푸시는 위치에만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려면

성령이 아니고서는 안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 역시 성경이 스스로 설명을 내 놓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2:10-11절을 읽어보면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아무도 알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정 역시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써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새의 생각을 새밖에 알수 없고 꽃의 생각을 꽃밖에 알수 없듯이

사람의 생각은 사람만이 알고 하나님의 생각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하나님의 생각(Spirit)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계시(열어 보여준다)해 주실 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성령이 주시는 마음을 받지 않고서

어미의 뱃속에서 태어나 인간의 사회에서 살아온 체로

사람의 인문학적 도구를 동원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속사정을 꿰뚫어 볼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주장이 더 신비주의에 가까우며

궤변에 가까운 논리인 것입니다.

 

성경의 증언처럼, 또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에게 이르신 것처럼

그것이 우리에게 낯선 영역이라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속에 계셨던 하나님의 영으로만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알수 있습니다.

 

때문에 영으로 쓰여진 성경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이 그 숨겨진 뜻을 이해 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나는 오직 인문, 사회, 철학적 연구 방식(위에서 열거한)들을 통해서만

성경을 파해칠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면

제 생각에 그 사람은 결코 자신의 교육적 배경과 인간관계에서 느낀 감정,

윤리적 선입관을 벗어나지 못한 체

성경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성경 중심적인 해석가이다라고 자칭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자기 마음대로 자기의 안경을 끼고 성경을 보는 가장 주관적인 해석가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결코 나의 의견을 개입시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천지에 없습니다.

만약 그게 가능하려면

위로부터 새로운 마음을 받은 사람이 새로운 마음과 눈으로 성경을 바라볼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 성령의 절대적인 역활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이곳에 연재할 성경 말씀 해석들은

다양한 성경 해석중 하나로써 여러분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시키는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혹은 다른 교사들과 논리적으로 다투어 저의 해석 방식을

더욱 설득력 있게 보이려고 애쓰지도 않을 것입니다.

 

말씀은 양식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썩지 않을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통해 열려진 말씀을 들을때 그것은 어떤 이들의 마음을 열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단지 어딘가에서 그리스도의 심령을 갈급해 하는

단 한명의 신부된 형제라도 있다면

들을 귀 있는 한분의 자매를 위해

 

신랑의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그 즐거움의 생명을 함께 누릴 것입니다.

 

나는 먼저 그 잔치에 참여하여 그분에게서 나오는 것을 즐거이 먹고 마셨습니다.

 

지금 나의 책임감은 내가 예전에 가졌던 육신의 생각과 감정을 버리고

새롭게 보게 된 하나님의 마음이 기록된 이 책을

사람들에게 동화를 들려 주듯 천천히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 또한 인간이고

모든 방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다 깨달아 알고서 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소망합니다. 성경이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사람의 행위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으며

아버지의 마음을 전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 마음을 받은 자들이 거룩하게 되어지는데 성경이 기록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릴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할일을 다 하는 것입니다.

 

곧 제 생각과 감정이 아닌 완전히 그 출발점을 달리 했던

그리스도의 세계를 통해 보게 된 성경의 뜻과 의미

그리고 그를 통해 알게 된 아름다운 복음의 의미들을

여러분에게도 나누어

 

행위로써가 아닌 심령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나타나실 여러분을 고대하며

이 글을 연재해 나갑니다.

 

성경을 연구할지라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바리새인들은

마귀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요8:44)

 

그러나 무릇 하나님의 영(마음)으로 인도함을 받게 되는 자들은

성경의 약속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그날에 나타날 것입니다(로마서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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