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귀인은 자신의 종 열을 불러 자기 소유를 나눠 맡기고
여행을 갔습니다.
그리고 왕위를 받은 후 돌아온 귀인은 한 므나씩 나누어 주었던 재산을
종들이 각각 어떻게 관리했는지를 알아 보려 했습니다.
한 사람이 왕 앞에 나아와 자신이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들었다고 보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 종을 칭찬하며 열 고을을 차지하라는 직분을 하사 했습니다.
한 사람이 나와 자신은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 종을 칭찬하며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이 나아와 자신의 수건에 싼 한 므나를 보이면서
당신이 단단한 사람(hard man)이라
내가 무서워해서 이리 보관을 해 두었다는 설명을 했습니다.
덧붙여 당신이 두지 않은 것에서 취하며 심지 않은 것은데서 거두는 분이라는 설명을 합니다.
그런데 주인은 이 설명을 듣고 불같이 화를 냅니다.
내가 무서운 줄 알았다면 그 돈을 누군가에게 맡겨 이자라도 받아두지 그랬냐고 하면서
그 종을 꾸짖고 그 있던 돈마저 뺏어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곁에서 듣던 종들은 왕의 처사가 불공평하다 여겨서 일제히 고합니다
"주인이시여, 그는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25절)"
그러자 주인은 종들에게 기이한 말로 답을 합니다
"있는 자는 더 받을 것이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길 것이다! (26절)"
그리고 자신의 왕위를 반대한 자들을 모두 끌어내 처단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을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처결을 마칩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이와 거의 유사한 이야기가 나와 있는데
조금 단어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인이 다섯 달란트, 두달란트, 한 달란트를 각 종에게 재능대로 나누어 주고
다시 돌아와 셈 하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상을 주는 방식이라든지 마지막 종의 남은 소유를 빼앗아
처음 종에게 주는 내용이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본질적으로는 두 이야기가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 않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록된 내용 중에는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바로 HARD MAN 이라고 종이 주인을 칭하는 부분입니다
(누가복음19:21절 / 마태복음25장24절)
하드 맨? 딱딱한 남자?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요?
한국어로 번역된 여러 성경들(개역/표준/쉬운/우리말)은
마태복음에서는 '굳은 혹은 완고한 사람', 으로
누가복음에서는 '엄한 사람'으로 이 단어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한 사람이든 굳은 사람이든 이런 번역은 문맥상 어색함이 많습니다.
이 단어를 헬라어 성경으로 다시 찾아보면
sklhrov" [스클레-로스] skleros 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스클레로스라는 단어는
형용사로써 hard, harsh, rough, stiff, violent, offensive, intolerable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대부분 상대방에 대해 불편하게 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의미들로써
폭력적이고, 거칠고, 참을수 없는 등의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상대를 괴롭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단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이 대놓고 주인에게 당신은 폭력적이며 참기 힘든 사람입니다 라고
항변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주인이 두려워 맡겨준 므낫조차 수건에 싸 둔 소극적인 태도의 소유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엄한 혹은 굳은 이라 표현된 해석은
Hard 라는 단어가 가장 흔하게 전달하는 뜻처럼
'어려운' 으로 해석하는 게 더 좋을 것입니다.
우리 말로 쉽게 표현하자면 종은 주인게게
'당신은 까다로운 사람이라서'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은 이런 이야기를 주인에게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평소부터 (관계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늘 까다롭게 대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당신의 처결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당신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어 들이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아 들이는 분이니시
제가 이렇게 한다 해서 크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심지 않는데서 거두어 들인다는 표현은
언뜻 남의 물건을 약탈해 재산을 끌어 모은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본문에서 왕위를 물려받고 돌아온 귀인은 예수님 자신을 뜻하는 것으로써
창조주이신 주인에게 종이 아부를 하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이 까다롭게 사람들을 대하시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 할 수 없었고
내가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본시 주인이 너무 부자라서
나의 소극적인 행위가 주인에게 크게 손해 갈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종은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인이 맡겨준 므나를 수건에 고이 싸서 묻어 놓은 이유는
평소 주인의 어려운 뜻을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교훈이 무엇일가요?
바로 이 종과 같이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자들이 오늘날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아마도 이렇게만 해 두면 안전할꺼야~' 라고 스스로 판단하여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안일하게 생각하는 처신법이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본문의 이야기는 사실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계시입니다.
왕위를 받고 오시려고 잠시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맡긴 사람들은
믿는 우리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귀인이 종들에게 나누어 준 은화 므낫(보석의 중량을 재는 단위)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며
이 므낫으로 장사를 하여 이득을 남긴다는 것은 또 무슨 행위를 뜻하는 것이며
한 므낫을 수건에 감추어 묻어 두는 행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하다 못해 이자라도 나오게 맡겨 두었어야 했다는 말은 또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성경의 감추어진 많은 비유들을 깨닫기 위해서
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세를 길러야 합니다.
은화는 예수님 자신의 재산이셨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예수님 자신의 보물이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의 재산이면서 동시에 따르는 자들에게 맡겨 주실 수 있는 것,
그러면서 그것을 우리의 자력으로 증가시킬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비춰질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그것을 성령의 은사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예언과 치유, 귀신을 내어좇는 능력, 지식과 지혜, 방언은
예수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맡겨 주신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신
일정한 부와 재능(talent)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마태복음서 25장의 기록은 실제로 이런 의미에 무게를 더 많이 실어 기록된 듯 합니다.
(관심있는 분은 마태복음 25장 후반부를 눈 여겨 읽어 보십시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 모두에게 동일하게 나누어 주신 은화 한 므나가
무엇인지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람의 재능(Telent)이나 성령의 능력(Gift of Spirit)은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정도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간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소유하고 계셨던 것 중에
가장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하시며
모두에게 동일하게 그 가능성을 나누어 주시면서도
이땅에 돌아 오셨을때는
우리 안에서 가장 먼저 찾으실 영적인 자산이 무엇일지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제 생각에 분명 '믿음' 일 것입니다.
필자가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데에는 두 가지의 성경 구절이 도움을 줍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기도에 대한 설교를 하시다
돌아올 날에 대하여 탄식하는 말을 남기시는데서 그 근거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18장8절 / 개역개정)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치시다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에 세상에 과연 이러한 믿음이 존재하겠느냐 라고
제자들에게 반문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는
제자들이 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 보시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필자는 바울의 고백 속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증가되는 선물을 발견합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엄청난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언급하는 엄청난 능력이란 예수님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는 빛으로부터 나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을 알게하는 빛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게를 맺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인격이 우리 안에서 증가하게 해주는 살아있는 믿음의 길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질그릇에 이 보물을 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알게 하는 믿음의 지식을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께서 10명의 종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신 은화 한 므나가
우리의 질그릇에 담아 주신 이 보물
곧 하나님을 아는 빛,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한 믿음의 기회를 주십니다.
모두 같은 말씀을 볼수 있게 해 주시며 같은 이름으로 기도할수 있게 해 주시며
같은 성령을 얻게 허락해 주십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같은 선상에서 경주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형제는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들어
열 고을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예정된 계획에 도착하게 되고
어떤 형제는 한 므나를 묻어 두고 마지막 날에 할 변명거리나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주님이 당췌 어렵고 이해 불능이신지라
저를 만나주신 은혜로운 경험을 고이 간직하고 살아 왔습니다.
주님은 굳이 제가 뭘 열심히 하지 않더라도 늘 스스로 모든 것을 하시는 분이니
내가 굳이 열심을 내며 살게 뭐 있습니까?'
하지만 그러한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을 알게 한 빛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비밀들은 더 많은 믿음의 지경을 구하는 자들에게 옮겨질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정해진 법칙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자는 더 있게 될 것이며
믿음이 없는 자들은 있던 적은 믿음조차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있는 자는 더 있게 되고 없는 자는 더 없게 되는 법칙입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같이 앉아 찬양하며
한상에 앉아 떡을 떼며 교제하지만
어느날 세상의 모든 것이 뒤바뀌는 날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서 믿음의 측량추를 따라 갈라서게 될 것입니다.
염소와 양이 좌, 우로 나뉘어지듯 말입니다.
그 날에 두 사람이 같은 이불에서 자다가 일어나 보니 한 사람만 남아 있게 되고
두 사람이 함께 밭을 갈다가 한사람만 남게 될 것입니다.(마태복음24:40-42)
이것은 우리가 마지막날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던지 아니던지
이미 정해진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나 일부 영적으로 무식한 교사들은 오늘도 우매한 말로
성도들에게 헛된 평안을 전하며 마지막 때를 준비하며 살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원래 하나님은 이해가 불능이신 분이시고 그분의 뜻은 심오하셔서
우리가 다 알려 들어도 알수 없는 것이라며
늘 하던 대로 열심히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목사님 말만 잘 들으면 만사 형통하게 된다는 소경의 가르침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도 그렇게 가르치는 교사들과
그런 가르침이 옳다고 철썩같이 믿는 분들에게 한가지를 꼭 묻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나눠 주시는 하나님의 빛,
그 반짝이는 한 므나는 지금 대체 어디에 묻어 두신 것입니까?
우리는 평생 성령을 따라 살며
그분의 성품을 배운다 해도 그분을 다 알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주요, 또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의 많은 부분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주인께서 기대하고 계시며 마지막 날의 심판과 상급 내리심을 앞두고 계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명확한 증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따를 수 없다 하면 되겠습니까?
그것은 거짓된 겸손에 불과합니다.(골로새서2:18)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계획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빛을 따라
주님께서 부요한 믿음의 유산과 그 나라의 다스림을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핑계대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본래 이해하기 힘든 분이고 나는 원래 이렇게 믿음이 적은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여러가지로 호소하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우리의 적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라도
이자를 벌어 예수님의 나라를 확장하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과 마음을 합하여 물신양면으로 그들을 도우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취리하는 자에게 맡겨 자신의 이자를 찾는 원리인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성령으로 깨달으십시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고 써 있는 것은
이런 영적 원리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분간할 것은
많은 헌금을 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선지자를 대접하지 않았다면
그는 하늘 나라에 이자를 쌓지 못합니다.
그것은 사기꾼에게 자신의 돈을 빌려주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이름으로 소자와 선지자를 대접하는 자들 역시
자기 받을 상을 이미 다 받아서 이자를 받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접하는 자가 예수님과 함께 상을 함께 누릴 것입니다.
(마태복음24장41절/ 마태복음6장2절)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형제들이 모두 처음에는 한 므낫을 받고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 저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태어날때부터 믿음이 좋은 사람도 있을까요?
그런데 누군가가 돌아올 주인을 대비해 변명할 궁리나 하면서
삶을 몽땅 썩어질 곳에 투자하고 다른 곳만 바라보며 살다가는
그는 주인에게 화를 당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형제는 그 시간에도 다시 오실 예수님의 영원한 나라를 기대하며
주인이 오셔서 의자에 앉으실 때까지 허리를 동이고
믿음의 경주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누가복음17장8절)
저는 이 경주의 끝을 봅니다.
오늘날 사두개인들처럼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하는 수많은 (영으로)
죽은 무리들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계획과 약속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상급과 영원한 보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따라 살면서도
더 큰 믿음을 구하며 나아감으로
그날이 이르면
열고을 아니 백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물려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천국만 들어갈 수 있으면 된다!
너처럼 광신적 신앙 생활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평범하고 평균적인 삶을 원한다. 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나의 건전하고 일상적인 신앙 생활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고 하시는 분들에게
저는 담담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얼마든지 원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예수님께서 당신을 다시 만나셨을 때
그분이 당신에게 어떤 상이나 칭찬을 내리시길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오늘 성경을 읽어 보니 한 므나를 땅에 묻어 놓고 예수님 오실날까지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아간 종들은
그때에 예수님께 꾸지람을 듣고 어두운데 좇겨나 이를 갈면서
슬퍼하리라 기록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그곳이 설마 지옥이냐고 제게 따지시려는 분들
복잡한 교리, 먼지 쌓인 은혜의 기억을
들춰 내면서 성질 부리시려는 분들은 잠시 멈추어 보십시오.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그 문
(예수님이 계시는 그 곳)
아마 들어가실테니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어떤 이들이 어두운데 쫓겨나고
이를 갈고 슬퍼할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곳은 바로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크고 웅장한 개선 나팔 소리와
왕같은 족속들의 흥겨운 잔치 소리 때문에
귀를 틀어막고 이가 갈리는 자리일텐데 말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인간들의 감정과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시는
이해하기 힘들고 까칠한 분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물쩍 정의하고 넘어가려 해도 그분은 그분이실 뿐입니다.
우리 주인은 오직 믿음의 주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 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확한 원칙과 계획에 따른 영원한 계획으로 지금도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 불변합니다.
아침에 뜨고 지는 태양처럼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우리의 위치를 떠나
그 곳으로 방향을 틀어 향하는 일 뿐입니다.
만약 어떤 이의 삶이 늘 불평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분이며
하나님을 믿어 무엇하냐는 회의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런 분은 자신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 보십시오
나는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알고 있는가?
나의 삶은 천성을 향해 걸어가는 계획에 따라 맞추어져 있는가?
아니면 이 세상 사람들이 따르는 계획들로 가득차 있는가?
오늘도 내가 계획하고 뛰어 든 삶에 예수님이 발견되지 않고 실망하면서도
내일도 다시 그리로 뛰어들 계획을 세우며
두려운 삶을 반복하고 있다면
사울처럼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사람임을 깨달아야 할것입니다.(사도행전26장14절)
예수님이 피로 맺으신 계획과 언약은 늘 불변하여
그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푯대가 되어 왔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가지
우리의 감정과 생각의 혼돈과는 상관없이
변하지 않을 영원한 생명의 계획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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