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일 토요일

오전부터 일한 사람과 오후부터 일한 사람의 품삯이 같은 이유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마태복음 20장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 이야기는 이 땅위의 농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포도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주지시켜드립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분이 한번씩은 들어 보았을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 기괴한 결말 때문에

대부분 독자들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넘겨버렸을 것입니다.

 

그것은 언뜻 불공정하고 횡포를 부리는 어떤 포도밭 주인의 이야기 같기 떄문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포도원에 주인이 있었는데 그 주인이 하루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인부를 고용하려고

직접 길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는 이른 아침에 만난 인부들에게 하루 품삯을 주기로 합의 를 한 후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일찍이 보냈습니다.(2절)

 

그리고 거기서 고용을 멈춘 것이 아니라 9시에 또 길거리에 나가 빈둥대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품삯 을 약속하고 자기 포도밭에 보냈습니다.(4절)

 

그리고 12시, 3시에조 길가로 나가서 놀고 있는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그리고 5시에 길가에 나가 보니 아직도 빈둥거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왜 당신들은 온종일 하는 일 없이 빈둥대고 있소?'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우리를 써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을 했다.(7절)

그러자 주인은 '어서 내 밭으로 가시오~' 라고 말하며 그들을 모두 고용합니다.

 

물론 이들에게도 9시 이후에 고용한 사람들처럼

품삯을 얼마 쳐 주겠다고 구체적으로 이야기 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제일 마지막으로 포도밭 주인이 채용한 사람들은

주인의 제안에 '에휴~ 장난하십니까? 이제 가면 제가 얼마나 벌겠습니까?

한시간도 안남았는데 그냥 안가겠습니다' 하지 않았고

이 선한 주인의 제안을 얼른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품삯 애기도 구체적으로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 점을 꼭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결국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주인이 하루 품삯을 셈하는데 마지막에 온 사람들부터 거꾸로 품삯을 지불해 주라

했는데 모두가 한데나리온씩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뒷줄에 서서 지켜 보던 인부들은 속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오~ 나는 저들보다 더 일했으니 저들보다 좀 더 받겠구나 이히히~'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주인은 당시의 하루 일당인 한 데나리온을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지급한 것입니다.

 

그러자 아침부터 일한 인부들이 뿔이 나 버렸습니다.

 

" 주인님, 마지막에 온 사람들은 겨우 한 시간밖에 일 안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10배나 더 많이 일한 사람

(최소한 오전 9시 이전부터 오후 6시까지 일을 하였기 때문에 대략 10시간을 노동한 것임)

에게 똑같이 급여를 지불할 수 있는 겁니까?

이건 부당한 처사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일한 인부들은 볼멘 목소리로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침에 당신들에게 하루 일당을 약속하지 않았소?

그대 품삯이나 받고 돌아가시오.

그리고 마지막에 온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는게 내 뜻이요,

내 것으로 내가 마음대로 못한단 말이요?

내가 후하니 도리어 당신들 눈에는 그게 거슬리시오?"

 

특별히 대꾸할 말이 없게 만드는 반박입니다. 

생각해 보면 고용주는 고용인을 쓸때 마음대로 그 삯을 지불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시장 경제에서도 이것은 똑같습니다.

 

계약을 맺은 사람이 계약대로 계약금을 노동자에게 지불하면 되는 것이지

고용주가 고용한 각 사람들에게 얼마나 돈을 지불하는지에 대해

피고용인이 왈가불가할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여러분은 이 글을 읽고 또 읽어 보아도

뭔가 맘이 꺼름직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주인이 노동과 그에 따른 댓가의 형평성을

깨뜨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왜도 이 본문은

엿장수가 가위를 몇번 때리느냐는 엿장수 맘이다!

이렇게밖에 안 보일 것이며

평소 부지런함과 그에 따른 결실을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은

이 본문을 읽을 때 화난 인부들과 동질감마저 느낄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래서 오늘날의 일부 교사들은 이 본문에 대하여 이런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한 것에 대한 상급을 얼마인지를 계산하면서 일하지 말고

순수하게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그저 감사하며 충성된 종처럼 일하라는 것입니다.'

 

얼핏 듣기에는 좋은 이야기지만

성경의 기록들은 그런 의견을 지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성경은 우리가 경기장에 들어선 선수들로써 선한 경주를 싸우고 있으며

그 성과에 따라서 우리가 받을 영광의 급이 다르다고

분명히 믿음의 경주를 열심히 해서 상을 많이 얻으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4:7-8 / 표준새번역)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월계관 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만이 아니라 주께서 나타나실 것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월계관은 로마의 경기 승리자들에게 주어지는 관이라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고린도전서9장 23-24 / 표준새번역)

 

나는 복음을 전하려고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이 주는 복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부 교사들의 상급을 기대하지 말고 헌신하라는 해석은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됩니다.

 

그러면 이 기묘한 본문은 대체 어떤 '하나님 나라의 원리' 를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일까요?

 

먼저는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주인 마음대로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똑똑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구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 봉사하는 양을 따져

우리를 칭찬하시기 보다

도리어 자신의 사랑을 이해하고 선뜻 받아들이는 사람을 더 좋아하시며

자기의 열심과 자존심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더 반응하는 자들에게 복을 조건없이 베푸신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다시 설명하면 사람 스스로가 자신이 내는 열심으로 하나님께 상을 구하는 자들은

그저 계약 이행자들로만 하나님께서 보시지만

자신이 많은 것을 하지 못했더라도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늘 믿으며

하나님의 밭을 가꾸어 가는 사람들은 은혜를 베풀 줄 자로 여기며 좋아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게 바로 '사람의 마음이 가는 곳' 이 아닌 '하나님 마음이 가는 곳' 이랍니다.

아시겠습니까?

 

자. 지금도 도통 무슨 말인지 헛갈린다는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 본문 주변을 살펴봅시다.

 

오늘의 본문인 마태복음20장 이야기 바로 이전(19장)에 어떤 이야기가 실려 있는지 아십니까?

 

한 부자청년이 예수님께서 나아와 어떻게 하면 자신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청년을 보시고 너가 계명들을 지켰나고 물어 보았는데

그는 놀랍게도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을 보시며 기뻐하시며

'너같은 사람이 아니고서 누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다 여김받고 영생을 얻겠느냐'

칭찬 하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에게 이렇게 강권합니다.

 

"너는 부족한 것이 있는데 네 재산의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그러자 이 부자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제자들이 놀라

대체 그렇다면 누가 능히 구원을 얻겠습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즉 계명을 다 지켜 행한 후에 자기 재산까지 다 팔아 이웃에게 나눠줘야만 영생을 얻는다는 식으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짧고 굵은 말로 대답을 하십니다.

'사람으로는 못해도 하나님은 능히 하신다' 라는 신비로운 답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면서 마태복음20장의 이야기를 이어 하신 것입니다.

 

아침 일찍 일하러 나온 인부들은 이 부자청년 같은 자들인 것입니다.

이 부자 청년은 모든 계명을 열심히 준행했습니다.

그는 참 부지런하고 성실했습니다.

 

그래서 이른 아침 일하러 온 인부들처럼

예수님께 더 칭찬을 받을수 있을꺼란 기대를 가지고

자신은 누구보다도 영생에 가까이 이르렀을 거라 여기며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을 듣고 이내 근심하며 돌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늘 성경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만약 우리가 이 부자 청년과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얻으려 한다면

날이 갈수록 좌절에 빠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영생, 복을 율법을 실천함으로 얻으려 한다면

이것을 행해고서 또 내일 저것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느 정도 노력해야 하나님의 구원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부자 청년이신 분들은 꼭 물어 볼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답할 것입니다. "그런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과 생명은

애초부터 인간의 노력 따위로 살수 있는 선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께 더 사랑받기 위해 일부러 계명을 지키지 말아야 하며

길거리에서 빈둥대던 인부들처럼 있어야 하겠습니까?

어떤 분들 안에서 제 말을 듣고 빈정대는 감정이 머리를 든다 해도

본문의 이야기는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일부러 빈둥댄다 해도, 일부러 계명을 안 지킨다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이나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은 매 한가지입니다.

 

단지 우리는 이 척박한 땅 위에 살면서

일한 만큼 받는데에만 익숙해지다 보니 '하나님의 나라' 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포도밭 주인은 이 세상 주인들과 달라

꼭 자신을 위해 10시간 일한 사람에게 1데나리온만을 지불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노력으로 인해 자신의 가산이 더 더해지거나 감해질 것이 없는 분이라는

엘리후의 증언을 혹시 들어보지 못하셨습니까?(욥기35:6-7)

.

여러분이 주님의 나라에 무엇을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주님 입장에서는 별것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별것처럼 여기는 일에 우리는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사람의 계산과 자존심에 기대어 살다 보니

반드시 일한 만큼 받아야 한다는 법을

자신에게도 적용하고, 이웃과 형제에게도 적용하고

심지어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까지 적용하려 듭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도리어 우리는 하나님의 부요를 깨닫지 못하게 되었고

아무 조건 없이 베푸시는 하늘의 사랑을 얻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많이 일해

하나님께 정당한 수당을 타 가는 자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라

많이 일하든, 적게 일하든 언제나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를

기대하고 신뢰하는 믿음을 소유한 자를 더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이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끝내

마태복음20장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에게 배운 경제 논리만이 머리속에서 빙글 빙글 돌아다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운 심중은 아예 안 보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존심 강한 부자 청년을 기뻐 하시지 않고 도리어 안타갑게 여기셨습니다.

오늘날의 열심당원과 율법주의자들이 모두 이런 죽음의 늪에 빠져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깨가 쳐져 돌아가는 청년을 향하여 마음속으로 외치고 계십니다.

 

청년아. 보아라!

장차 너보다 더 적게 일한 사람이 너보다 더 많이 받게 될 것이며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것이다. 이것이 내 영생과 구원의 계획이다.

(마태복음19:30, 마태복음20:16)

 

아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10)

행위와 관련된 법은 지키려면 모두 지켜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로마서3:28)

그러나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얻는 방법은 우리가 그분의 선하심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믿음 밖에 없습니다.

 

이제 기억해 봅시다.

5시에 불러서 자기 밭에 일하게 한 사람은

'어 주인님, 1시간만 일하고 돈 받는 것이 제 양심에 허락되지를 않습니다.

저는 열심히 일한 후에 정당한 급여를 받겠습니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존심 강한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현대인들의 경제적인 양심을 보시고 늘 만족해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세운 법칙에 불과할 뿐이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선하심을 기대하고 바라보는 것,

그것이 예수님이 전하시는 구원의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나는 염치 없어도 늘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기대합니다.

늘 옆에서는 어떤 이가 오늘도 나에게 말합니다.

"너는 염치도 없이, 너가 한게 뭐가 있다고?

너가 나보다 사랑을 받을수 있다고 생각하냐?

무슨 자격으로?" 라고

 

그러면 저는 대답하고 싶습니다.

"나 자신 때문에 아니라 바로 그분 때문에 나는 오늘도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

라고요.

 

아버지의 인자와 자비는 영원하십니다.(시편136편26절)

그렇게 노래하며 나는 어린아이처럼 오늘도 그분에게 매달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구원을, 영생을, 사랑을 거래하길 원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그저 자신이 선함을 먼저 알아보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렇게 하여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게 하시며 먼저 된 자들을 나중 되게 하십니다.

 

땅에서는 열심히 일한자가 많이 받으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자신의 열심을 의지하여 나아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자가 더 많이 받는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주님, 나는 주님을 위해 오늘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습니다.

저는 저 죄인과 같지 않았습니다. 하는 바리새인들보다는

가슴을 치며 도움을 구하던 세리가 의롭다 인정받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누가복음18:11-14을 꼭 읽어보시길)

 

이런 주제의 말씀은 회당의 열심 있는 교사들에게 거부 반응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런 주제의 말씀은 스스로 경건하다 여겨 온 율법주의자들에게 갈등과 회의를 불러 일으킵니다.

이런 주제의 말씀은 여짓껏 하나님께 구원의 상을 얻어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않고 봉사, 헌신해온 성도들에게 허탈감과 자괴감을 불러오는 치명적인

공황입니다.

 

그러나 어쩌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자신의 놀라운 마음으로 지금도

우리를 초청하시며 복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시겠다는데

하나님의 후하심이 뭐 잘못된 것이라도 있다는 것입니까?

 

저는 이런 말씀을 볼때마다 마음 속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도 한때 부자청년이 되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체험하는데는 기어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내가 지금껏 너무 건강하고, 너무 성실하고. 너무 의지가 강하여서

내가 옳다고 여긴 일들을 모두 지켜 내 왔다면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여전히 눈뜨지 못하고

오늘도 이른 새벽에 일어나 주인과 계약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삶에는 아무런 인자함이 없었습니다.

털끝만큼의 은혜도 더 나은 보너스도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지독하게 일한데로만 받는 상급만 늘 있었을 뿐입니다.

더 일해야 더 받는것, 그것이 내 몫이었습니다.

 

그러니 열심히 일한 만큼 상을 받으려 한 나는

성경 말씀대로 내 몫이나 받아 들고 쓸쓸히 집에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주님의 이 놀라운 제안에 너무나 감사가 넘칩니다.

나는 그분의 선하심에 주목해서 그분의 포도원에 들어 갈 때에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나의 노력으로 거래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의로움을 내세워 일하지 않으며

넘치는 감사로 그 문에 들어가며 그분의 궁전에 들어갑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포도밭을 경작합니다.

 

오늘도 일을 많이 마쳤냐구요?

걱정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저에게 오늘도 지나칠 정도의 삯을 지불하실테니 말입니다.

저는 오늘도 그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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