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은 다메섹 거리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려고
무려 예루살렘에서 240km나 떨어진 시리아의 수도 다메섹(다마스커스)까지
행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에 도착하기 전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임하여
사울은 땅바닥에 꼬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사울아 어째서 너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당황하여 그 음성을 향하여 대꾸합니다.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
여기서 주(Lord) 라는 용어를 쓰는 사울 자신도
사실 누가 지금 자기를 부르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자신에게 강한 빛을 비춘 대상이 천사 아니면 여호와의 영광일것이라 추측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빛 가운데 나타나신 이는 자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사울은 시내로 들어가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다메섹 거리로 들어갔지만
사흘 동안 보지 못하여 식음을 전폐합니다.
사실 사울이 밥을 먹을 수 있었겠습니까?
사울이 예수와 마주쳤을 때 얼마나 당황했을지 상상 해 보십시오.
게다가 눈이 멀어 땅을 더듬는 상황이었으니 그 공포감으로 인해
입맛이 다 떨어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때 다메섹에 살던 그리스도인 아나니아가
예수님의 명을 받아 사울을 찾아가게 되었고
그가 안수할때 사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사울은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답니다.
사울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힘들었을 것입니다.
삼일 동안 어둠 가운데 갖혀 지내며
자신이 부정해 온 예수의 살아계심에 대해 두려워 해야 했고
자신이 평생 지은 죄 값을 치르려면 소경이 되어야 하는지
자신에게 질문해 보았을 겁니다.
그리고 부활과 내세를 믿었던 율법학자로써
부활의 주를 부인한 자신이 구원이나 얻을 수 있을지
온갖 번민과 갈등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자신이 배운 학문이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꼼꼼한 성격의 사울이 머리속으로
율법을(당시엔 신약이 따로 없었음으로 성경 자체를 율법서라고도 불렀음)
수없이 암송하며 되뇌어 보았을 것입니다.
선지자 요나처럼 침묵의 어둠 속에 갖힌 삼일 밤낮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어둠이 사울을 다시 토해냈을 때
사울은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순순히 아나니아가 시키는 일을 따라 했을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임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손에 자신을 의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이 다시 볼수 있게 되자
곧바로 사울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사도행전9장18절)
그리고 음식을 먹고 기운 차린 사울을 예수 믿는 모임에 데려갔습니다.
사울은 그곳에서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마음을 정리했을 것입니다.
몇일이 지나자 사울은 회당을 돌아다니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20절)
사울이 이렇게 큰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기까지는 채 몇주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어렸을때부터 하나님을 섬기던 데 열심 있는 자였습니다.
할렐 학파의 가말리엘 문하에서 엄격한 율법을 공부하며 자란 사람이었으며다.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고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이단으로 여기고
그들을 잔해하는데 앞장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스스로 자처하면서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가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잡아들이려 했습니다.
사울은 이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옳다 여기는 일을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호흡을 가다듬고 사울을 바라 보면서 생각을 좀 해 봅시다.
혹시라도 우리의 삶이 이 예수를 만나기 전 사울의 모습과 깉지 않은지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각자 옳다 하는 바로 열심 있게 신앙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형태로 신앙 생활을 하는 자들을 별 생각없이 이단으로 몰아 세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자신의 열심이 혹 사울처럼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 해 보신적은 있으십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마귀의 종이나 타락한 사람들, 심지어 미치광이 집단이라고 여긴 사람들이
사실은 쉬이 이해하기 힘든 그리스도의 진리를 따라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을 미워하는 여러분의 잘못된 열심이 예수의 몸을 박해하는 것이라면 어찌하시렵니까?
많은 사람들은 저의 이런 질문에 크게 동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은 대부분 전혀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죠.
그래서 다들 당당하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저의 신앙은 절대 그럴수 없습니다.
오랬동안 교회를 출석해 왔지만 어떠한 이상한 일에도 빠진 적 없습니다.
제 주변 교우들 모두 지역 사회에서 모두 인정받고 건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한쪽으로 치우친 적이 없이 온전한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겨 왔고
전통적이고 권위있는 기관에서 항상 성경을 배워왔습니다.
제 자격증과 신분이 그것을 말해주지 않습니까?
제가 비정상적이라고 여기는 신앙인들은 소위 생활 패턴에 규칙이 없고
혼잡하며 윤리 규범을 중요시 여기지 않고
전통을 무시하며 신비로운 것들만 좇는 자들이니
그들의 열매(?)로 보아 그들은 이단이 확실합니다.
그들이 죄 가운데 빠져 있으니 그들이 그릇되다 세상에 외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요.
또 내가 만약 하나님의 일을 거스르고 선지자를 박해하고 있다면
진작에 하나님께서 나를 벌하셔서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하시지 않으셨겠습니까?"
저는 이런 고백을 사울도 동일하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울은 위에서 말하는 화자의 배경에 정확히 들어 맞는 삶을 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런 사울이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았을 때
위에서 서술한 내용들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모습들이었기에
이단으로 판단 했을 것이 자명합니다.
또 사울은 자신이 주님의 일을 거스리고 있다면 그에 상응한 벌을 이미 받았을 것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사르는 불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던 제자들을
꾸짖으시면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십시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다!(요한복음12:47)
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우리의 생각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할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다면
우리 중 몇 명이나 하늘을 쳐다 보며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마 그를 통해 깨닫기는 커녕 두려움에 빠져 땅에 얼굴을 처박고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우리의 대 제사장께 긍휼을 얻지 못한다면
이 땅에는 하나님과 교제할수 있는 자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열심 있고 보수적인 신앙심 자체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해괴해 보이는 이단 그리스도인들을 미치광이라 여겨서
스데반이 돌로 맞아 죽을 때도 돌로 치는 자들의 옷을 받아줄 정도로
자신의 감정과 정신이 온당하고 의롭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눈이 멀게 됨으로써 그러한 자신의 선택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렸을때부터 전통있는 가문에서 권위있는 사람들에게 배우며 자랐지만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겉모습만 보고 성령을 훼방했습니다.
그가 최소한 자신이 눈먼 자임을 깨닫기 전까지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길을 열심히 선택하여 오늘도 걷고 있습니다.
자신이 잘못 될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는 자신을 약하게 만든다는 생각 때문에
아예 꺼리낌이 되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옳음을 입증하려고 더욱 많은 사람을 오늘도 자신의 생각에 동조시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시적인 성과를 쌓아 올리려 노합니다.
때로는 자신과 반대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욕하여 자신과 우리들의 힘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응답없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해서는
그저 하나님을 속절 없이 원망하거나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여기며
(하지만 최소한 잘못된 길에 빠진 것은 아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뿐입니다.
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이러한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다메섹에 도착해 버리기전에 눈 먼 역사가 있으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왔습니다.
그 이후 여러 번 내가 확신하며 가던 길에서 완전히 소경이 되어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외적으로는 고열에 시달리거나 위경련에 시달리고 음식을 넘길수 없는 상태가
빈번하게 되었으며
내적으로 삼일 밤낮보다 더 길고 어두운 고기 뱃속에 꼼짝 없이 드러 누워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겨우 기운을 차리고 다시 일어났 때에는
나는 내 삶속에서 지녀온 확신이
도리어 하나님의 사랑을 강력히 거절하게 하며
내가 지닌 과거의 열심이 그분의 사랑이 다가오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나의 의지로 일해 왔으며 예수의 뜻과 마음이 아닌 판단으로 일해 온것을
알았을때 나는 소경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길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나는 자들은 모두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눈이 멀고 뜨는 경험 을 반드시 합니다.
이것은 참 놀라운 일이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예수를 좇지 않는 자들은 절대로 소경될 일이 없습니다.
눈이 멀어도 지팡이를 짚게 되었어도
소경된 마음만 지닌체 자신이 고집한 길을 멸망의 날까지 걸어갈 뿐입니다.
지금 이순간도 우리 모두는 얼마나 옳은 길을 따라 걷고 있는 것일까요?
그 길들이 예수의 삶을 따라 생명에 이르게 하는 발걸음일까요?
아니면 도리어 예수의 피로 세운 자들을 핍박하거나
예수의 영을 대적하러 가는 다메섹으로의 발걸음일까요?
우리가 자신의 소경됨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눈을 떠야 하는 어린 아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서
다 자란 어른처럼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요?
(요한복음9장39절41절 / 개역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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